이준목 칼럼
2010/03/09 07:17
스피드업 규정, 빠른 것만이 능사일까?
[야구타임스 | 이준목] 개막을 앞둔 올 시즌 프로야구에 ‘스피드 업’ 비상이 걸렸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하여 유독 경기시간이 길다는 것은 한국야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경기당 평균 시간은 3시간 22분으로 일본(3시간 13분)이나 미국(2시간 52분)이나 비하여 훨씬 길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KBO는 지난해부터 경기시간 단축을 촉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에도 5회 종료후 실시하던 클리닝타임의 폐지, 투수들의 12초룰의 확실한 시행, 고의적인 경기 지연행위에 대한 엄격한 제재 등을 그 핵심으로 한 ‘2010년판 스피드 업 규정’을 지난 5일 발표했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모았던 건 단연 ‘12초룰’이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포수에게 공을 받은 뒤 12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하고, 타자도 한번 타석에 들어서서 양발을 고정시키면 임의로 타석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을 끌다가 12초를 넘기거나 임의로 경기를 지연시킬 경우, 심판의 경고를 거쳐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는 보크로 판정받게 된 된다.

한창 열리고 있는 시범경기부터 이런 12초룰은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 두산 고창성이나 삼성 브랜든 나이트, SK 정우람 등이 12초룰 위반으로 경고를 받았다. 물론 대부분 1차 경고에서 그쳤고 시범경기였던 만큼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가볍게 넘어갔지만, 막상 시즌이 개막되고 난 이후에는 어떤 변수로 떠오를지는 알 수 없다. 아직 12초룰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이 많은 만큼 승부처에서 민감한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경기시간 단축 효과는 확실히 드러났다. 지난 주말 막을 올린 시범경기들은 모두 3시간 이내로 경기가 완료됐다. 실전이 아닌 시범 경기들은 다소 빠르게 진행된다는 일반적인 경향을 감안해도 지난 시즌보다 10여분 이상 단축된 효과다.
시간제한 규정은 사실 올해부터 새롭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15초 혹은 20초 등으로 명목상의 규정은 존재했으나, 실전에서 그대로 적용된 경우는 드물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사장되었다. 심판이 이를 일일이 제재하기도 어려웠고, 불필요하게 경기에 개입하려든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KBO가 시간제한 룰을 철저하게 적용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심판들이 직접 초시계를 재면서 에누리 없이 관리하다보니 달라진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제도는 도입 당시부터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서는 탐탁치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경기시간이 늘어지는 것을 막는 것과는 별개로 야구의 특성이나 선수들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제도를 강행한 것에 따른 불만이었다.
12초룰은 투수에서 유리할까 아니면 타자에게 유리할까. 일단 투수들은 타자들이 일단 자리를 잡고나면 곧장 공을 던져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1~2점차 승부에서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상대할 경우, 설사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도 투수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신중하게 사인이라도 몇 번 교환하려면 12초는 금방 지나가버린다. 경고를 받기 전에 빨리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제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12초룰 도입과 함께 스트라이크존이 좌우로 넓어지면서 타자들도 볼을 맞추는데 애를 먹게 되었다. 특히 타석에 서기전에 예비 동작이 긴 선수들이나 스윙이 큰 거포들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기존에는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선 뒤에도 헬멧을 고쳐 쓰거나 방망이를 고쳐 잡는 경우가 흔했고, 투수와 타자가 서로의 눈을 맞추면서 투구동작이 시작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12초룰 하에서는 타자들도 한번 타석에 들어서면 인플레이 상황이 되어 이유 없이 시간을 끄는 것이 금지된다. 투구동작이 간결한 투수라면 오히려 이를 역이용 할 수도 있고, 타이밍을 못 맞추는 타자들은 그대로 서서 삼진을 당할 확률도 높아진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새로운 제도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선수도 손해를 보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취지인 경기시간 단축에는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 반드시 빠른 것만이 능사인지는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야구는 ‘템포의 미학’이다. 축구나 농구 같은 러닝타임이 정해진 종목들과는 또 다르게, 경기의 흐름에 따라 완급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민감하게 승부를 다투는 상황에서 투수들이 투구동작을 지체하거나 타자가 타석을 발을 빼는 것 같은 행동은 고의적인 지연이라기보다는 아니라 일종의 ‘신경전’이자, 경기의 템포를 조절하는 하나의 고단수의 작전으로 여겨졌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에 대해서는 물론 엄격한 제재가 있어야겠지만, 분명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단지 12초라는 짧은 시간에 기계적인 룰을 강요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다소간의 우려를 자아낸다.
PC 게임이라면 정해진 시간 안에 원하는 구질과 목표지점을 정하고 타자는 배팅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실제 야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투수와 타자간의 심리전과 볼배합 등 무수한 경우의 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빨리 던지고, 빨리 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속에서는 투수와 타자, 감독과 감독 간의 치열한 두뇌게임과 지적 유희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야구의 세계인 것이다.
‘세상이 빠르고 편해졌지만, 좋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스피드업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제도가 과연 프로야구의 질적인 재미를 향상시키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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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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