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거인은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하여 영원히 떠났다. 언젠가 한번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신을 기다려준 가족과 팬들에게 밝게 웃으며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복귀의 인사라도 해주기를, 등번호 '20'이 새겨진 자이언츠의 옛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 번 그때의 그라운드에 서주기를 많이 이들이 간절하게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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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이 바꾸어놓은 ‘10년’의 운명

만일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 이제 그날의 기억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가장 슬픈 하루가 되고 말았다. 롯데-LG전이 벌어진 2회초, 후속타자로 안타로 2루 까지 진루했던 임수혁은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나타내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코치들이 달려 나와 임수혁의 상태를 확인하며 다급하게 의료진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에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시간은 안타깝게 흘러갔다.

5분. 어쩌면 임수혁의 운명은 그 5분 사이에 바뀔 수도 있었다. 빠른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만 제때 받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건만, 당시 잠실구장에는 제대로 된 의료 시스템이 아무 것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임수혁은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후송되는 시간동안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되며 심장 부정맥에 의한 발작 증세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야구를 사랑했고 야구밖에 몰랐던 '순수한 자이언츠맨' 임수혁의 시간은 그때부터 멈췄다.

3,583일, 햇수로는 10년에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이 그날 이후 임수혁이 병상에서 보내야했던 시간들이다. 잔혹한 5분과 맞바꾸어야했던 10년의 운명은 임수혁과 그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한국 야구계와 야구팬들에게도 오랫동안 씻을 수 없는 어두운 트라우마로 남아야했다.

더 이상 방망이와 글러브를 잡고 그라운드를 누빌 수도, 환호하는 팬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임수혁은 우리 곁을 떠난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었다. 그의 육신은 가혹한 운명의 장난으로 인하여 잠시 정지되었을지 몰라도, 그의 영혼은 계속 야구계에 남아서 우리에게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말아야할 비극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일깨워주고 있었다.

▲ 되풀이되지 말아야할 역사의 교훈

한국프로야구는 어느덧 서른의 문턱을 넘보고 있지만, 구장의 환경이나 복지시스템은 아직도 쌍팔년도 시대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임수혁의 충격적인 사건은 야구계에 커다란 화두를 던졌다. 경기장 내 응급의료 시스템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제는 8개 구단 모두가 현장에 신속한 응급 처치와 구급차를 통한 병원 후송시스템을 일정 수준으로 구축했으며, 유사시 현장직원들도 응급처지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킬 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임수혁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당연히 준비되어 있었어야할 과제였고, 훨씬 일찍부터 개선의 목소리가 높았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비용과 인력상의 문제를 내세워 번번이 무시되기 일쑤였다.

격렬한 운동을 하는 프로스포츠는 수시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특히 지난해 프로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부상폭탄에 몸살을 앓았다. 김태균은 뇌진탕으로 쓰러졌고, 조성환은 공에 안면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기도 했으며, 이종욱은 수비도중 동료선수와 충돌하여 스파이크에 목이 찢기고 턱뼈가 골절되었다. 무더운 여름에 체력소모가 심한 상황에서는 임수혁같이 갑작스럽게 호흡곤란 증세를 보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만일 이런 상황이 10년 전에 똑같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스포츠의 응급의료시스템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들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실제로 경기장에 전문의가 상주하는 경우도 드물고,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도 미흡하다는 평가다.

또한 임수혁처럼 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없는 상황에 이를 경우, 선수의 치료비나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에 대한 대책마련에 있어서 복지대책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임수혁의 일은 한 개인에게만 찾아온 특별한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선수들은 아직도 이런 수많은 잠재적인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왜 사람은 항상 일이 닥쳐오고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후회를 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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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란 세월 속에 흔적은 묻혀도,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임수혁은 야구계에서 동료 야구인들 간의 정과 의리, 그리고 팬과 선수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화두를 남겼다. 야구계 동료와 선후배들은 세대와 관계를 막론하고 임수혁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보냈으며, 그의 이름은 야구선수들의 열악한 복지환경과 현장의 모순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상징적인 이름이 되었다. 팬들 역시 롯데 팬들은 물론이고 지역과 구단을 초월하여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임수혁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뭉쳐지며 큰 교훈을 안겨줬다.

임수혁에게 지난 10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육신의 시간은 정지된 상태였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도 임수혁은 병상에 오랫동안 누워있으면서도 의식은 남아있어서 때로는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지인들과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 동료, 팬들이 임수혁을 잊지 않은 것처럼, 임수혁 역시 그들이 보내준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난 10년의 시간이 그저 외롭지만은 않았으리라.

임수혁은 이제야 고단한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비로소 평안한 잠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작별은 언제나 가슴 아프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할 과정이기도 하다. 마음속에 추억이 남아있는 한 그를 그리 멀리 떠나보낸 것이 아니다.

10년의 시간동안 짊어져야했던 고통스러운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진 저 천국에서는 살아생전 못 다한 야구를 마음껏 하면서, 그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내고 있기를 기원해본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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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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