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목 칼럼
2010/01/27 09:56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의 한국무대 도전사
[야구타임스 | 이준목] 최근 몇 년간 한국 프로 선수들의 일본무대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국내에서도 일본야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일본에서도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선수들에게 해외진출은 그림의 떡이었지만, 이제는 일정한 조건을 채우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한국 선수들도 해외로부터 좋은 조건의 오퍼를 받는 게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국내 톱스타들은 한국보다 더 좋은 환경과 처우를 보장하는 일본 진출을 동경하게 되었고, 일본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한국야구에서 검증된 스타들을 영입하는데 적극적이 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야구 교류가 점차 빈번해졌다.
한국프로무대를 거쳐 일본무대에서 진출한 선수는 모두 12명이다. 1996년 선동열(현 삼성)를 시작으로 이종범(KIA), 이상훈(은퇴), 정민철(한화 코치), 정민태(히어로즈 코치), 구대성(한화), 이승엽(요미우리), 이병규(LG), 임창용, 이혜천(이상 야쿠르트), 김태균(지바롯데),이범호(소프트뱅크) 등이 그 주인공이다. 조성민(요미우리)은 대학졸업 후 국내 프로무대를 거치지 않고 곧장 일본에 진출한 케이스다.

2000년대가 되고 한국야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일본무대에서 한국 프로야구로 진출하는 선수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국내 프로야구 출범 초창기에는 일본 국적을 지닌 재일교포 선수들이 활약한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일본인 야구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한다는 것이 흔한 사례는 아니었다. 검증된 선수라면 아무래도 일본보다는 야구 환경이나 처우도 열악하고 한 수 아래로 취급하는 한국 무대에서 굳이 낮은 급료를 받아가며 도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선동열이나 이승엽 같은 한국인 스타들이 국내무대를 평정하고 최전성기의 기량으로 일본무대에 도전했던 것과 달리, 일본에서 한국무대로 진출해오는 선수들은 이미 나이를 먹어 전성기가 지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일본무대에서도 최정상급으로 손꼽힐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야구가 일본인 선수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되었던 것도 아니다. 내로라하는 북미나 중남미의 대형 외국인 선수들조차 고전하는 한국무대에서 외국인으로 뛰어야하는 일본인 선수들 역시 정교한 일본야구와는 또 다른 한국야구만의 근성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제무대를 통하여 한국야구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일본 선수들은 한국야구의 매력과 가능성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미지의 무대에서 실력을 한 번 발휘해 보기위해 도전장을 던지는 일본인 선수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98년 한국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래 모두 6명의 일본인 선수가 한국 땅을 밟았으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2003년에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투수 이리키 사토시다. 2001년 야쿠르트 시절 10승 3패 방어율 2.85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을 만큼 일본무대에서도 인정받는 투수였으나, 이듬해 팀과 재계약에 실패한 후 무적선수가 되어 헤매던 중 동생의 권유로 한국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당시 이리키는 당시 계약금 3만 달러, 연봉 7만 달러, 옵션 5만 달러 등 총액 15만 달러에 두산과 계약했다.
이리키는 2003시즌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39경기에서 7승 11패 5세이브 방어율 3.74를 기록했다. 겉보기에 평범한 성적이지만 안정된 구위로 두산 마운드의 전천후 계투로 분전했고, 6월 이후부터 선발로 전업했음에도 그해 6차례의 완투를 기록했을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두산은 시즌이 끝난 후 이리키와 재계약 방침을 세웠으나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불발되고 말았다. 이후 이리키는 2004년 대만으로 진출했고 200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같은 해 롯데 자이언츠는 역시 투수인 모리 카즈마를 영입했다. 일본야구에 정통하던 당시 백인천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프로가 아닌 사회인야구 출신이던 모리는 시범경기에만 잠시 출장한 후 실력부족이 드러나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퇴출당했다. 결국 이는 당시 모리의 영입을 강력히 반대했던 구단 프런트와 백인천 감독의 갈등이 불거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년 뒤인 2006년에는 SK에 입단한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타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무대를 밟았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과 오릭스 등에서 활약했던 시오타니는 계약금 500만엔과 연봉 2천300만엔, 그리고 개인 통역과 전담 트레이너를 제공받는 등 한국무대를 밟았던 역대 일본인 선수 중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입단하여 화제를 모았다.
기대에 걸맞게 시오타니의 초반 활약은 강렬했다. 2006시즌 23경기에 나와 타율 0.297, 3홈런 19타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초반 타격 주요부문에서 모두 상위권에 랭크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의의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 중간 방출되고 말았다. 많은 이들은 부상만 아니었으면 시오타니가 한국무대에서 뛰었던 최고의 일본인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2008년에는 히어로즈가 다카쓰 신고를 영입했다. 다카쓰는 한국무대를 밟을 때 이미 40세의 노장이었지만,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300세이브를 돌파한 역대 일본인 선수 중 최고의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로 꼽힌다. 시즌 중반부터 합류했음에도 히어로즈의 마무리로 자리 잡으며 18경기에 등판해 블론세이브 없이 1승 8세이브, 평균자책점 0.86, 탈삼진 18개의 눈부신 피칭으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한미일 야구에서 모두 세이브를 달성한 투수는 다카쓰가 유일하다.
다카쓰와 히어로즈는 2008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령탑으로 취임한 김시진 감독은 다카쓰의 적지 않은 나이와 투구 자세 등의 약점을 지적하며 재계약을 포기했다.
가장 최근에 활약한 선수는 바로 지난 시즌 SK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다. 시즌 중반 마이크 존슨을 대체 선수로 합류한 카도쿠라는 26경기에서 8승 4패 평균자책 5.00의 평범한 성적을 올렸으나, 정규시즌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 실질적인 팀의 2선발로 활약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외국인 선수임에도 팀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은 투지와 성실한 자세는 팬들에게 많은 호평을 얻기도 했다. SK는 그의 공헌도를 인정해 재계약에 성공, 카도쿠라는 일본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두 시즌 연속 한국무대를 밟는 선수가 되었다.
LG는 최근 오카모토 신야의 영입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전문 구원투수로 활약한 오카모토는 9년간(2001∼09년) 통산 357경기에 등판해 32승 19패 92홀드 2세이브, 방어율 3.21을 기록한 베테랑이다. 2004년에는 센트럴리그 최우수 계투상을 수상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각각 주니치와 세이부에서 일본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에는 세이부에서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22경기에만 등판해 1패 6홀드 방어율 3.97에 그쳤고, 시즌 후 방출됐다.
LG가 일본인 선수를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는 중간계투 요원이었지만, LG는 경험이 풍부한 오카모토를 일단 마무리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계약조건은 연봉 20만 달러에 계약금 5만 달러 등 총 25만 달러. 마무리투수로서는 이리키와 다카쓰에 이어 세 번째다.
기록에서 보듯이 한국야구는 일본 선수들에게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최근 7년간 5명의 일본인 선수가 거쳐 가는 동안 재계약에 성공한 것은 카도쿠라 한 명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량미달은 모리 카즈마 한 명 정도였고, 시오타니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한 케이스였다. 대부분 기량 면에서는 일본 선수들이 한국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데 희망이 있다.
모 구단 관계자들은 “개인주의 정서가 강하고 돌출행동이 심한 미국이나 중남미 용병들에 비하여, 일본인 선수들은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편이다. 카도쿠라나 오카모토가 성공할 경우, 앞으로 일본에서도 한국무대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바다건너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제 2의 야구인생에 도전하는 일본인 선수들의 올 시즌 활약이 주목되는 이유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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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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