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 이준목] ‘다사다난’, 2009년 프로야구를 정의할 수 있는 표현이다. 3월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시작으로, 프로야구 500만 관중 시대 돌파한 정규시즌을 거쳐, 타이거즈의 12년만의 V10으로 마감한 한국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환희와 탄식,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는 영욕의 시간을 거쳐 한국야구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안고 2009년 한 해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큼이나 아쉬움이 남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올 한해 야구팬들 사이에서 최대의 이슈를 몰고 왔던 ‘논쟁적 순간’으로는 어떤 장면이 있었을까.

▲ WBC 대표팀 감독 선임논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야구는 WBC 차기 사령탑문제를 놓고 오랜 시간 갈등을 겪어야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지휘자였던 김경문 감독이 대표팀을 고사하자, KBO는 부랴부랴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인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려했으나 절차상의 문제에 불만을 품은 김성근 감독 역시 고사. 결국 1회 대회 사령탑인 김인식 감독에게 ‘억지 추대’ 형식으로 감독직을 떠넘기는 촌극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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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맡지 않으려던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김인식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선수구성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한국야구를 WBC 결승까지 끌어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하며 ‘위대한 도전’을 완수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은 WBC 사령탑을 수락하는 자리에서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겨 수많은 야구팬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국가를 위하여 고생하느라 소속팀을 미처 돌보지 못한 김인식 감독에게 돌아온 것은, 소속팀 한화의 꼴찌 추락과 재계약 실패라는 암울한 결과였다. 거동도 불편한 노감독에게 억지로 지휘봉을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한 KBO에 가장 큰 잘못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절차상의 ‘핑계’를 내세웠지만 결국 본인의 자존심 때문에 감독직을 거부한 김성근 감독이나, 소속팀 사정을 내세워 코칭스태프 합류를 고사한 다른 젊은 감독들도 한번쯤은 책임감을 느껴야할 부분이 아닐까.

▲ 임창용의 ‘사인 무시 논란’

김인식 감독과 함께 WBC가 배출한 또 하나의 희생양은 바로 임창용이었다. 해외파 선수와 베테랑들이 개인사정을 이유로 대거 대표팀 합류를 고사한 시점에서, 임창용은 추신수와 함께 유이한 해외파이자, 대표팀의 주전 마무리로 대회 내내 고군분투하며 한국의 WBC 결승진출을 앞장서서 견인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결승전 연장 10회, 일본의 국민스타 이치로에게 허용한 통한의 결승안타는 임창용을 일시에 WBC의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대회가 끝난 후, 임창용이 벤치의 사구 지시를 고의로 무시했다는 ‘사인 무시 논란’이 확신되며 임창용은 비난의 궁지에 내몰리고 말았다. 확인되지 않은 근거로, 임창용을 사인무시를 기정사실화하며 옛 제자를 비난하는 데 앞장서는 옹졸한 모습을 보여준 김응룡 사장을 비롯한 일부 야구인들, 그리고 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쓸쓸히 한국을 떠났던 임창용은 WBC 후유증에 주눅들지 않고, 일본 무대에서 ‘미스터 제로’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본야구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거듭났다. 자신을 둘러싼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실력으로 대답한 임창용이야말로 진정한 ‘올해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 조성환과 박재홍, 빈볼 하나가 빚어낸 불상사.

지난 4월 23일 정규시즌 경기도중 롯데 조성환은 SK 채병용의 투구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광대뼈가 세 곳이나 골절된 조성환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고 결국 수술까지 받아야했다. 조성환에게 사구를 던진 채병용은 태연하게 캐치볼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며 더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건의 불똥은 이번엔 SK 박재홍에게도 튀었다. 8회 롯데 투수 김일엽의 초구가 박재홍의 몸 쪽으로 바짝 붙자 박재홍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이는 양 팀 선수를 마운드로 불러 모으는 벤치클리어링 사태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흥분한 박재홍과 롯데 공필성 코치가 언쟁을 주고받으며 논란이 확대됐다. 후일 박재홍은 공필성 코치에게 정중히 사과했고, 김성근 감독과 채병용도 조성환의 병실을 찾아가 정중히 사과하는 것으로 화했지만, 이 사건이후 SK는 한동안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며 사직구장을 찾을 때마다 야유를 피하지 못했다.

▲ ‘풍운아’ 정수근의 은퇴

‘풍운아’ 정수근은 올 시즌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8월말 부산의 모처에서 술을 마시며 난동을 부렸다는 술집 종업원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출동하는 등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정수근은 이후 롯데로부터 퇴출당했고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는 ‘무기한 실격처분’을 받았다.

정수근은 지난해 음주파동이후 롯데 구단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1년 만에 복귀했지만,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불미스러운 사태에 휩쓸렸다. 결국 재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자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팀이 중요한 순간에 개인사업 등을 이유로 야구에만 전념하지 못한 정수근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한편으로 선수의 입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여론의 눈치만 보다가 정수근의 복귀와 제명 과정에서 확실한 원칙을 수립하지 못한 KBO의 안이한 행정에 더 많은 질타가 쏟아졌다.

▲ 팬들이 볼모? 야구중계권 논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 프로야구의 인기 돌풍으로 인한 야구열풍은 전국을 물들였다. 야구를 메인으로 내세운 각종 TV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선을 보이며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을 등에 업고, 팬들을 볼모로 잡은 반대로 방송사들의 중계권 다툼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SBS스포츠를 필두로 한 4사 스포츠 방송사와 중계 대행사 에이클라와의 해묵은 갈등이 악화되며, 시즌 초반 한때 전 경기 TV중계가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들 외에 중계계약을 맺었던 일부 케이블 방송사에서는 단 두 경기 만에 중계를 철회해, 기득권을 쥐고 있는 대형 방송사들의 담합과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행히 중계는 재개되었지만 이런 사태가 앞으로도 재현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야구 컨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팬들의 볼거리를 볼모로 하여 기득권을 독점하려는 방송 권력과 스포츠 에이전시의 무단횡보에 대한 대안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입만 열면 어록, ‘이슈메이커’ 김성근

‘야신’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최고의 이슈메이커였다. 그가 입만 열면 곧 기사화 되고 야구계의 이슈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감독은 전면 드래프트제, 끝장 승부, 월요일 경기, 더블헤더 부활, 스피드 업 등 논란을 일으킨 정책이 시행되거나 사라질 때마다 야구계 어른으로서 KBO의 탁상행정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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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김성근 감독이 지나치게 ‘자신 혹은 SK 중심주의적’ 시각에 갇혀 도를 넘어선 언론플레이와 월권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 KIA전에서 벌어진 고의 패배 의혹, 8월 군산 KIA전에서 벌어진 심판의 오심논란, 9월 LG 에이스 봉중근의 잔여시즌 기용여부에 대한 비판, 10월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 김상현의 주루플레이에서 수비방해 논란과 사인 훔치기 등이 대표적이다.

김성근 감독은 특유의 직설적인 언행으로 인하여 야구팬들에게 평가가 엇갈리지만, 적어도 기자들에게는 끊임없이 이슈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감독인지 모른다.

▲ LG, 내분과 단합 사이

올 시즌 LG만큼 성적 대비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팀이 또 있었을까. 올 시즌 성적은 7위에 그쳤지만 스포트라이트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받았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조인성과 심수창은 지난 8월 6일 잠실 KIA전에서 배터리를 이뤘다가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경기 중, 그것도 모두가 쳐다보는 마운드에서 같은 팀 선수 간의 불협화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LG의 팀 내분과 모래알 조직력을 드러내는 결정적 장면으로 치부되며 고위층에까지 알려졌고, 결국 두 선수는 2군행을 명령 받아야했다.

그 후 ‘그라운드의 악동’ 서승화는 2군에서 방망이로 후배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물의를 일으켰고, 시즌 막판에는 박용택의 타격왕 밀어주기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박용택은 타격왕에 오르고도 자랑하지 못하고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당히 사건을 덮고 넘어가려던 김재박 감독은 책임자로서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았고, 같은 해 물러난 김인식 감독과는 달리 떠날 때도 박수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짐을 꾸려야했다.

▲ 야구게임과 초상권

인터넷 야구게임의 무법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인터넷 야구게임의 초상권 무단 사용에 대하여 프로야구 은퇴선수들이 법원이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게임회사들이 사적인 영리 추구를 위해 인터넷 게임에서 야구 선수들의 이름을 무단 사용한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신청인들의 성명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어 “추후 손해배상을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신청인들이 자신의 성명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인격적 특성과 불가분의 관계여서 재산적 가치로만 환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공인이나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초상권 및 인격권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끝나지 않은 히어로즈 사태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도 있다. 바로 히어로즈 선수 장사 파동이다. 이미 간판스타 이택근을 LG로 현금 트레이드하려던 것은 가입금 분배를 둘러싼 해석 차이로 KBO에 제동이 걸린 상황. 하지만 이로써 히어로즈의 선수 판매 방침은 노골적으로 공개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태는 히어로즈가 프로야구계가 뛰어난 2년 동안 과연 ‘8개 구단 체제 유지’라는 명분 이외에 야구발전을 위하여 공헌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선수를 팔아 구단을 연명하면서 여론의 비판에는 립서비스로만 책임을 회피하려는 히어로즈도 문제지만, 앞으로는 히어로즈를 비판하면서 뒤로는 선수를 사들여 실속을 채우려는 나머지 7개 구단과 야구계의 이중적인 행보도 팬들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히어로즈는 과연 이대로 야구계 애물단지 혹은 쇼핑몰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까.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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