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타임스 ㅣ 손윤 기자] 메이저리그와 관련된 영원한 떡밥 중에 하나가 "역대 최고의 투수는 누구인가?"이다. 과거에는 통산 511승을 거둔 사이 영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최근에는 당시의 레벨 등을 고려했을 때에 월터 존슨야말로 MLB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위의 질문에 메이저리그만이 아닌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이 영과 월터 존슨을 주장하겠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름인 사첼 페이지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니그로리그가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투수

사첼 페이지는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백인들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대항했던 니그로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 중의 한명이다. 1947년에 재키 로빈슨이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서 필드에 나서기 전까지 메이저리그는 오로지 백인들의 무대였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어쩔 수 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조직했고, 그 조직이 바로 니그로리그이다. 혹자들은 니그로리그라는 명칭에 비유해서, 당시의 메이저리그를 화이트리그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그로리그의 레벨은 지금으로 치면 고교야구에서 프로팀 수준의 팀들이 뒤섞여 있었다. 즉, 선수들 간의 격차가 극심했다. 하지만, 이 레벨의 차이는 니그로리그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메이저리그의 레벨이 니그로리그보다 좀 더 높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그로리그가 요즘 말로 '듣보잡' 수준은 아니었다. 시즌이 끝난 후에 메이저리그와 니그로리그는 올스타전을 가졌는데, 268승 168패로 니그로리그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그런 니그로리그이지만, 아쉽게도 그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그 당시에 활약한 생존자들의 기억이나 단편적인 신문 기사 등에 의존해서 성적을 추정하고 있는데, 사첼 페이지는 2,600경기 이상을 등판해서, 2,000승(300완봉, 55노히트게임) 이상과 30,000탈삼진 이상이라는 가히 만화책 속의 주인공도 거두기 어려운 통산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가 이러한 경이적인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불같은 강속구와 홈플레이트 위의 답배갑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파이어볼러 중의 한명인 밥 펠러는 "그의 패스트볼은 나의 패스트볼이 체인지업처럼 느껴질 정도로 빨랐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즉, 놀란 라이언의 강속구와 그렉 매덕스의 제구력을 동시에 가진 투수가 사첼 페이지였다. 그와 관련된 진위여부는 불명확한 전설로는 27명의 타자를 모조리 탈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거나 마지막 타자가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으로 출루해서 28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닌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의 성적으로는 1930년에 있었던 메이저리그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22탈삼진 완봉승을 거둔 것과 1934년에 105경기에 등판해서 104승을 기록한 것 등이 있다.

세기의 홈런왕과의 전설적인 대결

그의 야구 인생에서 최고의 하일라이트는 1942년 니그로 월드시리즈에서 벌어진 조쉬 깁슨과의 의도적인 맞대결일 것이다. 조쉬 깁슨은 1934년에 84홈런을 친 것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유명한 야구기록백과사전인 '베이스볼 인사이클러피디아'에 따르면 이 84홈런도 셀 수 있는 것만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즉, 실제로는 84홈런보다 더 많은 홈런을 쳤다고 할 수 있다. 17년간 프로리그에서 활약한 그는 962홈런 이상과 타율 0.373(혹은 0.391) 등의 통산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사첼 페이지와 조쉬 깁슨은 니그로리그의 투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지만, 1932년부터 1936년까지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는 등 좀처럼 맞대결을 펼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마침내 1942년에 그들이 속한 팀이 니그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외나무 승부를 펼치게 되었다. 1차전에서 5이닝 2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사첼 페이지는 2차전에서는 2 : 0으로 앞선 7회말에 구원 등판하였다. 8회초에 그가 속한 캔자스시티 모나크스가 3득점하였지만, 계속된 연투로 인해 구위가 무뎌지면서 8회말에 4실점하였다. 9회초에 모나크스가 3득점을 올리면서 스코어는 8 : 4로 다시 벌어졌다. 2연승을 눈앞에 둔 9회말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2사 3루에서 연속해서 두 타자를 고의사구로 걸러 보냈다. 일발 장타 한방이면 동점이 될 수 있는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것은 조쉬 깁슨이었다.

사첼 페이지는 조쉬 깁슨과 피할 수 없는 승부를 연출하기 위해서 고의로 앞선 두 타자를 걸러 보낸 것이다. 마운드에 선 사첼 페이지는 관중들이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조쉬 깁슨에게 "지금부터 공 3개를 전부다 패스트볼로 던지겠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누가 더 뛰어난지 제대로 한번 승부를 펼쳐보자."고 말했다. 사첼 페이지의 말을 들은 5천여명의 관중들은 열광했다. 사첼 페이지가 던진 제1구는 약속대로 인코스를 파고드는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지만, 조쉬 깁슨의 방망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2구는 한가운데 직구로, 제1구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볼이었다. 하지만, 조쉬 깁슨의 방망이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사첼 페이지는 조쉬 깁슨에게 "조쉬, 이번 볼은 인코스 무릎쪽을 파고들 것이다."고 말했다. 천천히 와인드업한 그는 이전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빠른 볼을 구사했고, 조쉬 깁슨은 배트를 든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투타를 대표하는 니그로리그의 야구신들의 대결에서 루킹 삼진으로 사첼 페이지가 완승을 거둔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 조쉬 깁슨은 "사첼 페이지가 전력으로 던진 패스트볼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 4차전에서도 사첼 페이지는 선발 등판해서 승리를 거두면서, 시리즈 4승 중에서 3승을 거두는 발군의 활약을 펼치면서, 팀을 니그로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페이지, 메이저리그에 가다

사실 조쉬 깁슨과의 대결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루를 만든 것은 사첼 페이지의 특기였다. 또한, 그는 외야수를 모두 내야로 불러들인 상황에서 경기를 펼치기도 하였고, 때로는 내외야수를 전부다 벤치로 물린 후에 포수와 단 둘이서 타자를 상대하는 기상천외한 장면도 연출하였다. 그런 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은 1948년 6월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공식적으로는 갓 42세였지만, 정확하게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본인도 몰랐다. 어린 시절에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서 교도소에 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1906년 6월 7일생으로 속였다고 한다. 데뷔 당시의 나이와 관련해서는 실제로는 43세라던지 48세라는 설도 있는데, 황당무계한 이설 중에는 57세였다는 주장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열렬한 추종자 중의 한명이 바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오너인 빌 빅이었다. 빌 빅의 제안으로 1948년에 역대 최고령 신인으로 인디언스에 입단한 그는 주로 중간 계투로 21경기에 등판해서, 6승 1패 방어율 2.48 등을 기록하였고, 월드시리즈에서도 5차전에 등판하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등판한 흑인 투수가 되었다. 1949년에 31경기에 등판한 것을 끝으로 그는 다시 니그로리그로 돌아갔다가, 1951년에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오리올스)와 계약을 맺어면서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메이저리그와 니그로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한 베이브 루스가 삼진을 두려워해서 벤치를 지켰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불같은 강속구를 자랑하였지만, 도미니카에서 활약하던 1938년에 어깨를 다친 이후로 과거와 같은 강속구는 한 경기에 몇 번 볼까말까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1952년에는 2완봉승을 포함해서 12승(10패)과 방어율 2.07 등을 기록하였고, 6월 8일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서는 12이닝을 완투하면서 1 : 0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완봉승 기록이었다.

1952년과 1953년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하였지만, 브라운스가 1953년을 끝으로 볼티모어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사첼 페이지도 메이저리그의 유니폼을 벗고 니그로리그로 돌아갔다. 니그로리그와 세미 프로팀 등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한 그는 1964년에는 농구팀에서 농구볼로 묘기를 부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잊혀져만 가던 전설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5년 9월이었다.

전설은 유니폼을 벗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사첼 페이지가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이너리그 등에서 선수로 뛰거나 이벤트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야구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실 생활 때문이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의 연금을 수령하는 조건에 3이닝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빌 빅은 자신의 우상에게 필요한 3이닝을 채워주고 싶어했고, 그 결과 사첼 페이지는 1965년 9월 10일 당시 빌 빅이 오너로 있던 캔자스시티 어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그의 공식적인 나이는 59세였고, 실제로는 60, 61세, 혹은 73세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간호사가 배치된 가운데 9월 25일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였다.

1회초에 칼 야스트렘스키에게 2루타를 허용하였지만, 무실점으로 막은 그는 2회와 3회에는 삼자 범퇴로 레드삭스의 강타선을 처리하였다. 3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한 그는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를 위해서 어슬레틱스는 3회초가 끝난 후에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커튼콜의 시간을 가졌고, 야구장을 찾은 9천여명의 관중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그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것으로 그와 관련된 전설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혔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시 연금법이 개정되면서 158일이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메이저리거로서 그 일수를 채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빌 빅은 코치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팀을 물색하였고, 결국 1968년 8월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계약을 맺도록 주선하였다. 사첼 페이지는 한술 더 뜨서 브레이브스에서도 마운드에 오르는 이벤트를 연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브레이브스도 그 생각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노령으로 인해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관계자들이 제지하면서, 이 계획은 실행되지는 못했다. 단지, 사첼 페이지와 같이 연금 때문에 고령에도 마운드에 오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커미셔너인 보위 쿤은 1969년 2월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일수를 단축시켰다.

또한, 1971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대상으로서 메이저리그뿐만이 아니라 니그로리그도 포함시키는 개혁이 단행되었다. 당연히 그 첫번째의 영광은 사첼 페이지의 몫이었다. 쿠퍼스타운에서 행해진 연설에서 그는 "예전에는 많은 사첼 (페이지)이 있었다. 셀 수 없는 조쉬 (깁슨)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몇 백명의 선수가 3명이나 4명이 아닌 정말로 몇 백명이나 있었다. 나와 같은 강속구를 던질 수 있던 수많은 사첼 페이지가 니그로리그에서 야구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통산 승수는 28승에 불과하지만, 그의 생애 통산 성적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2,000승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사실과 전설의 간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첼 페이지를 보면,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세계가 전설은 아닐지 싶다.

// 손윤 기자(블로그 : yago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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