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및 특집
2009/07/04 14:49
[이닝 인터뷰] 히어로즈의 유쾌한 안방마님, 강귀태(上)
[별을쏘다] 히어로즈의 유쾌한 안방마님, 강귀태(上)

▷ 투수와 포수
지금 히어로즈의 투수진 성적이 생각 외로 좋지 않다
작년과 큰 전력 차이는 없었다. 스코비나 다카쓰같은 외국인 선수가 빠진 것 외에는 바뀐 게 없다. 2군에 있던 신철인, 이상렬 선수가 와서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여니까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투수 문제만은 아니고, 포수에게도 책임이 있다. 전반적으로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중반 이후에 연패를 했다가 다시금 안정세를 찾고 있는 추세다.
일단 선발투수들인 (장)원삼이나 (마)일영이 같은 경우가 작년 10승 이상을 해 줬는데, 에이스 원투펀치가 조금 부진하기 때문에, 그렇게 성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선발투수들이 너무 일찍 무너져, 중간 선수들을 빨리 투입해야 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어린 편이라, 볼과 스트라이크 타이밍을 모르고, 힘으로만 던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도 많은 생각을 하고, 투수 코치님, 선배님, 후배들과 다 이야기를 하면서 극복하려 하고, 그런 것들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투수들의 성적이 부진한 경우, 오히려 포수들에게 책임이 많이 돌아간다.
외국의 경우에는 포수 책임도 있지만, 베테랑 투수들은 볼배합을 자신들이 한다. 신인들은 포수가 하자는 대로 하지만, 나머지 투수들은 자기들이 싸인을 내고 던진다. 그렇기 때문에, 볼배합만 가지고 그러기는 좀 그렇다. 한국은 주전 포수들이 다 베테랑들이 많다. 젊은 선수들로 바뀌는 경우가 적은 편이고, 그 분들의 실력은 높이 사지만, 어린 포수들이라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게임의 일부분, 경험의 일부분이니까, 안 좋았을 때는 메모해놓고, 생각하고, 정면 승부 같은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게임 끝난 후에 공부하는 그런 자세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지금 프로에 내 동기들도 많은데, 같이 더 분발해서 잘했으면 좋겠다.
공격형 포수라는 평을 들었다. 이 말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대학교 때부터 많이 들었는데, 그 때 수비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신 수비보다는 공격이 뛰어난 편이어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포수로서의 자신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인데... (잠시 생각한 후) 다 조금씩 부족하겠지만, 제일 큰 단점은 작년에 비록 104게임을 뛰었지만, 경험이나, 인사이드 워크 부분이다. 내가 다른 포수들에 비해 다리가 길고 키가 커서 순발력이 떨어지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을 받는다. 장점은 파이팅, 강한 어깨 송구 정도?
하나씩 들어보겠다. 포수에 있어서 블로킹은 필수 요소다.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3루에 있던 어디에 있던 변화구 사인을 두려움 없이 즐겨서 한다. 난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변화구 사인을 더 많이 넣는다. 블로킹이 약하다는 것은 못 느끼겠다.
미트질, 인사이드 워크 같은 부분이 포수의 안정감과 연관된다고 보는가
좀 미세한 부분인데, 예를 들어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는 포수는 단순히 공을 잡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포구를 1초, 2초 있어준다고 한다. 가지고 있으면 투수가 포인트를 찾기가 쉽다는 뜻이다. 주위에서 조언하기를 포수의 미세한 차이는 그 점이라고 한다. 내가 볼 때도 그 차이 같다. 사실 대학, 교교 때는 투수들이 나를 좋아했다. 포수 보면서, 파이팅 해 주고, 끝까지 격려해 주고, 볼이 되도 끝까지 잡아주고 그랬다. 지금도 그러려고 하고 있고.
포수가 투수를 실제로 리드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할 수는 있다. 포수가 상대방 타자들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틀리다. 모르고 있는데 사인을 내는 것과, 알고 있는데 사인을 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젊은 투수들이 많기 때문에 볼배합에 대한 의존도가 포수로 많이 간다. 김동수 선배님이 앉아계시면 어린 선수들은 고개를 못 흔든다. 선배님이 베테랑이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러나 베테랑 투수들은 동수 형이 앉아도 고개를 흔든다. 그 차이 같다.

▷ 거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포수
김동수 선수와 비교할 때, 경험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경험 이야기는 할 때는 아니다. 나도 이제는 비록 스타팅으로 못 나간 적이 많아도 7년차로서 배운 것이 많으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수술 외에는 2군에 간 적은 없다. 많이 배우고, 메모했기 때문에 경험 이야기는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상대방 타자들을 매일 연구하는가
그렇다. 주전 타자들은 많이 바뀌지 않는다. 신인 때부터 봐왔던 선수들이고, 게임 전에 무조건 미팅을 해서 분석한다. 여기에 원정 보고서, 기록원님들의 지원도 있어서, 그런 것은 어렵지 않다.
박경완, 김동수라는 거물 포수의 그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실력이 우선한다. 나한테도 분명 기회가 왔다. 안 온 것이 아니다. 특히 2003년에 박경완 선배가 FA로 갔을 때 주전 기회가 왔다. 1차전 롯데와 수원에서 정민태 선배랑 호흡 맞춰서 완봉승을 하고, 2차전에서도 바워스와 4회까지 잘 막고 있었다. 그런데 바워스가 포크볼을 주로 구사하는 투수라 포크볼을 블로킹 하다가 오른쪽 내측 인대가 끊어졌다. 그래서 한 달 쉬었는데, 그 때 역전이 되었다. 원래 김동수 선배님이 내 백업이었는데, 쉬고 나오니까 선배님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으셨다. 프로의 세계는 정말 냉정한 것 같다. 기회가 왔을 때 못 잡고, 부상으로 빠져 있으면 어느 선수든지 자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면 안 된다.
그래도 그런 거인들에게서 많이 배웠을 것 같다.
많이 배웠다. 입단할 때 존경하는 선수가 누구냐고 쓸 때, 박경완 선수라고 썼었다. 박경완 선배님과는 1년 같이 있었는데, 정말 묵묵하신 분이다. 경완이형을 1년간 많이 봤는데, 투지와 열정이 강하시고, 근성도 강하시다. 그리고 인사이드, 투수리드, 송구, 블로킹 뭐 하나 흠 잡을 수 없는 분이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캐칭도 가르쳐 주셨다. 처음 얘기를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박경완 선배님이 아파서 내가 나갔을 때, “캐칭 할 때, 너무 뻗지 말고 몸 가까이에서 해라. 심판이 볼 때는 잡을 때 스트라이크여도 몸 가까이에서 잡지 않으면 멀어 보인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이다.
김동수 선배님은 정말 몸 관리를 잘 하신다. 누구보다도 선배님은 몸 관리에 정말 철저하신 분이다. 홈이든 원정이든 식사를 아침, 점심, 저녁, 야식까지 매 끼마다 다 하시고. 항상 새벽 12시 전에 주무시고, 굉장히 일찍 일어나시고, 운동을 거르지 않으시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배터리 코치에게 특별한 조언을 받는 것이 있다면
우리 팀의 정인교 코치님을 안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정 코치님은 열정이 강하신 분이다. 운동도 조목조목 도움이 되는 것을 선별해서 시키시고, 선발 투수랑 나가면, “귀태 니가 투수들이 어리니까, 이닝 끝날 때마다 이야기를 많이 해 줘라,”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2007년을 기점으로 타격 성적이 떨어지는 추세다.
그러니까 말이다. 백업으로 나갈 때는 벤치에서 쉬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때는 잘 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2007년 병원 다니면서 게임을 못 나오고 작년부터 다시 나왔는데, 그 점을 많이 느낀다. 패턴이 게임을 계속 나가다보니까 체력적인 한계는 못 느껴도 타격 성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혹시 수비에 대한 부담감이 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그렇다고 수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감독님도 “내가 너한테 타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비를 원하는 것이다. 타격에 큰 신경 쓰지 말라.” 이렇게 주문하신다. 감독님께서 공격은 덤으로 생각하신다고 하신다.
▷ 유망주 강귀태,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정
옛날이야기를 해 보자. 고졸 우선지명으로 현대에 지명 받았다. 하지만, 동산고 전력은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 때는 항상 초반에 탈락 했다.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가 있었고, 체고가 해체되면서 인천에서는 한 팀만 대회에 나갔다. 그 때 인천고에는 수경이가 있었고, 동산고에는 내가 있었다. 우리가 아마 대통령배를 갔던가. 서울 게임은 한 번 8강까지 갔을 거다. 천안북일고한테 졌다. 왼손, 오른손 잘 던지는 친구, 누구더라...(질문자가 김민규, 한상훈이 아니냐고 묻자.) 맞다, 김민규, 한상훈 두 친구에게 졌다.
특별히 대학으로 진학한 이유가 있었는가
일단 3월에 동국대에 가등록했는데, 프로도 바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박경완 선배님도 트레이드로 현대로 옮겨 왔다. 당시 학교 감독님이 저한테 이야기하시기를 “잘 생각하자고, 지금 박경완도 있는데, 니가 가서 바로 주전은 못한다, 대학가서 운동을 열심히 하면, 인지도도 있게 될 테니까, 그렇게 해라.” 그런 조언으로 대학에 가게 되었다.
대학교 생활을 회고한다면
2학년 때 우승을 했었다. 함께 있던 선배님들도 유명하신 분이 많았다. 학교에 신경현, 백재호 선배님도 계셨다. 내가 입학할 때는 신경현 선배님 졸업할 때였다. 대학 다니면서 국가대표를 두 번 했다. 1학년 때 상비군에 뽑혀서, 태국에서 연습했다. 3학년 때는 한미일 게임을 갔었다.
[이어지는 글] 히어로즈의 유쾌한 안방마님, 강귀태(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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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이닝(inning.co.kr), 히어로즈 구단>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기자(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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